2016년 ‘올해의 장애인상’ 수상자 면면
최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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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9 14:12
2016년 ‘올해의 장애인상’ 수상자 면면
금동옥·윤정열·장성빈씨…국민훈·포장 등도 소개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6-04-19 12:01:31
정부는 ‘제36회 장애인의 날(4월 20일)’을 맞아 올해의 장애인상(3명), 국민훈·포장(7명), 대통령 표창(5명), 국무총리 표창(4명) 수상자를 확정했다. 시상식은 오는 20일 여의도 63빌딩 그랜드볼룸홀에서 열린다. 올해 수상자의 면면을 소개한다.
■올해의 장애인상(3명)
“내가 탈 휠체어 내 손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금동옥(남·44세·지체1급·주식회사 휠라인 대표)
■올해의 장애인상(3명)
“내가 탈 휠체어 내 손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금동옥(남·44세·지체1급·주식회사 휠라인 대표)
자동차정비로 언젠가 자신의 사업장을 운영하고 싶다는 꿈을 안고 살아가던 21살 청년 금동옥(남·44세·지체1급)은 우연한 사고로 지체장애 판정을 받았다.
혈기왕성한 나이, 평생 장애인의 삶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지만 홀어머니와 중학생 남동생을 돌봐야 하는 가장이었던 그에게 절망은 사치였다. 재기의 발판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그에겐 기술이 있었다.
“제가 휠체어를 이용하게 되다보니까 휠체어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처음에는 휠체어 판매하는 일을 했어요. 당시만 하더라도 국내에서는 커다란 병원용 휠체어만 제작이 가능했죠. 지금처럼 활동용, 스포츠용 휠체어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2001년 사업에 처음 도전했는데 용접, 가공, 봉제 전과정을 독학으로 익혔죠. 경험도 노하우도 부족했고 성공적이진 않았어요. 그게 다 자산이 되었습니다.(웃음)”
그리고 6년이 흐른 2007년 경기 안성에 공장을 차리며 재기를 노렸지만 힘들기는 매한가지. 그 후 2년여의 준비 끝에 2009년 휠체어 제조공장을 시작했고 맞춤 제작이 필수인 스포츠용 휠체어로 승부수를 띄었다.
“럭비용 휠체어가 시작이었어요. 아시아에서는 첫 시도였죠. 외국 제품을 어렵게 수입해 철저히 분석했습니다. 저희 회사에서 생산된 럭비용 휠체어는 선수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자신감을 얻으면서 배드민턴, 테니스, 펜싱 등 다양한 종목에 맞는 휠체어를 생산했어요. 국가대표 선수들이 저희 회사 제품을 사용하면서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냈어요. 정말 기뻤죠.(웃음)”
스포츠용 휠체어 제작 노하우가 쌓이면서 제품군을 활동용 휠체어로 넓혔다. 활동용 휠체어는 주문자 맞춤형이다. 휠체어를 사용하게 되는 이의 장애정도, 체형 등이 모두 고려된다. 까다로운 주문자는 여러 차례 제조현장을 방문해 여러 차례 수정을 요구한다.
“저희 회사에는 중증장애인 직원이 반 이상이에요. 휠체어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주문자의 요구가 당연하다 생각합니다. 휠체어가 완성되기까지는 짧게는 2~3주에서 길게는 2~3개월이 소요됩니다. 50만 원에서 천 만 원 이상되는 고가의 제품이죠. 일상을 함께해야 하는 제품이니만큼 꼼꼼하게 살펴야죠. 맞춤 주문형으로 제작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죠.”
주문의 반 이상은 입소문이다. 사용자의 만족도가 높은 휠라인의 제품은 중국으로까지 판로가 확대됐다. 최근 몇 년간 매출이 연간 10억 원 정도로 안정되어 가고 있다. 여기에 좋은 일이 하나 추가됐다. 제36회 장애인의 날 시상식에서 ‘올해의 장애인상’을 수상하게 된 것.
지난해 오랜 바람으로 아이를 얻은 기쁨에 비길 만 하다는 금동옥 대표. 앞으로도 내가 사용하는 휠체어를 만든다는 심정으로 제품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그라운드 위에서는 모두가 선수일 뿐입니다”
윤정열(남·58세·뇌병변2급·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 축구단 코치)
혈기왕성한 나이, 평생 장애인의 삶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지만 홀어머니와 중학생 남동생을 돌봐야 하는 가장이었던 그에게 절망은 사치였다. 재기의 발판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그에겐 기술이 있었다.
“제가 휠체어를 이용하게 되다보니까 휠체어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처음에는 휠체어 판매하는 일을 했어요. 당시만 하더라도 국내에서는 커다란 병원용 휠체어만 제작이 가능했죠. 지금처럼 활동용, 스포츠용 휠체어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2001년 사업에 처음 도전했는데 용접, 가공, 봉제 전과정을 독학으로 익혔죠. 경험도 노하우도 부족했고 성공적이진 않았어요. 그게 다 자산이 되었습니다.(웃음)”
그리고 6년이 흐른 2007년 경기 안성에 공장을 차리며 재기를 노렸지만 힘들기는 매한가지. 그 후 2년여의 준비 끝에 2009년 휠체어 제조공장을 시작했고 맞춤 제작이 필수인 스포츠용 휠체어로 승부수를 띄었다.
“럭비용 휠체어가 시작이었어요. 아시아에서는 첫 시도였죠. 외국 제품을 어렵게 수입해 철저히 분석했습니다. 저희 회사에서 생산된 럭비용 휠체어는 선수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자신감을 얻으면서 배드민턴, 테니스, 펜싱 등 다양한 종목에 맞는 휠체어를 생산했어요. 국가대표 선수들이 저희 회사 제품을 사용하면서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냈어요. 정말 기뻤죠.(웃음)”
스포츠용 휠체어 제작 노하우가 쌓이면서 제품군을 활동용 휠체어로 넓혔다. 활동용 휠체어는 주문자 맞춤형이다. 휠체어를 사용하게 되는 이의 장애정도, 체형 등이 모두 고려된다. 까다로운 주문자는 여러 차례 제조현장을 방문해 여러 차례 수정을 요구한다.
“저희 회사에는 중증장애인 직원이 반 이상이에요. 휠체어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주문자의 요구가 당연하다 생각합니다. 휠체어가 완성되기까지는 짧게는 2~3주에서 길게는 2~3개월이 소요됩니다. 50만 원에서 천 만 원 이상되는 고가의 제품이죠. 일상을 함께해야 하는 제품이니만큼 꼼꼼하게 살펴야죠. 맞춤 주문형으로 제작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죠.”
주문의 반 이상은 입소문이다. 사용자의 만족도가 높은 휠라인의 제품은 중국으로까지 판로가 확대됐다. 최근 몇 년간 매출이 연간 10억 원 정도로 안정되어 가고 있다. 여기에 좋은 일이 하나 추가됐다. 제36회 장애인의 날 시상식에서 ‘올해의 장애인상’을 수상하게 된 것.
지난해 오랜 바람으로 아이를 얻은 기쁨에 비길 만 하다는 금동옥 대표. 앞으로도 내가 사용하는 휠체어를 만든다는 심정으로 제품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그라운드 위에서는 모두가 선수일 뿐입니다”
윤정열(남·58세·뇌병변2급·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 축구단 코치)
만능 스포츠맨 윤정열 씨(남·58세·뇌병변2급)는 초록 잔디가 깔린 그라운드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다. 그가 코치로 활동 중인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 축구단 선수들과 경기를 뛰며 땀을 흠뻑 흘릴 때, 가장 즐겁다.
윤정열 씨는 10살 이전까지 어머니 등에 업혀 등·하교를 해야 할 정도로 장애가 심했다. 그를 세상으로 나오게 한 건 ‘축구’였다. 덕분에 고등학교 과정까지 비장애 친구들과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20대 청년이던 1980년대 뇌성마비청소년 국제캠프 참가를 계기로 뇌성마비청년 자조단체인 ‘청우회(靑友會)’를 조직했다. 거동이 불편한 재가 뇌성마비인들의 외출을 돕고 축구팀을 꾸리고 여가활동을 지원했다. 이곳 청우회는 자연스레 교제의 장이 되었다.
이렇게 활발히 운영되던 모임은 2007년 ‘한국뇌성마비장애인협회 청우(靑友)’로 거듭나 뇌성마비 청년 회원 200여 명이 활동하는 단체로 성장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윤정열 씨에게 1988년은 매우 특별하다. 서울올림픽이 열린 그 해, 서울장애인올림픽이 함께 개최됐다.
윤정열 씨는 축구국가대표로 선발, 주전 골기퍼로 활약했다. 메달권에 들지는 못했지만 이 때의 경험으로 이듬해인 1989년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 축구단의 전신인 뇌성마비장애인 축구부를 창단했다.
훈련 장소, 섭외, 대회 출전 등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7인제뇌성마비축구에 대한 열정을 더욱 커졌다. 윤정열 씨는 우리나라 장애인 축구의 1세대이다. 그라운드를 뛰던 선수에서 자연스레 지도자로 포지션을 바꿔갔다.
축구단을 체계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 축구지도자 과정을 이수했고 영국프리미어리그 스킬즈교육을 수강하기도 했다. 그가 코치로 있는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 축구단은 평균 연령 마흔 살의 뇌성마비장애선수 18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령의 선수단을 이끌면서 2011년부터 5년간 전국뇌성마비축국대회에서 준우승, 우승 등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그리고 선수단 가운데 일부는 2014 인천아시안게임 7인제축구 국가대표 등 국제경기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그 역시 2011년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기도 했다.
축구는 윤정열 씨의 삶을 바꿨다. 뇌성마비장애로 걷기조차 힘들었던 그가 축구를 시작하며 하지 근력이 좋아졌다. 보행이 가능해진 것. 누구보다 장애인 스포츠의 필요성을 알고 있다. 2010년부터 장애청소년 축구교실을 운영하며 기술자문도 맡고 있다. 글쓰기를 즐기는 그는 2005년부터 개인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는 장애인축구에 대한 그간의 경험이 담겨 있다.
때로는 해외 유명 선수들의 기술 분석과 뇌성마비축구선수들을 위한 지도방법도 기록해 둔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하게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그다. 지난해에는 한국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에 입학, 만학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판소리 명창 꿈꾸는, 발달장애 소리꾼
장성빈(남·19세·지적3급·전주예술고등학교 학생)
윤정열 씨는 10살 이전까지 어머니 등에 업혀 등·하교를 해야 할 정도로 장애가 심했다. 그를 세상으로 나오게 한 건 ‘축구’였다. 덕분에 고등학교 과정까지 비장애 친구들과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20대 청년이던 1980년대 뇌성마비청소년 국제캠프 참가를 계기로 뇌성마비청년 자조단체인 ‘청우회(靑友會)’를 조직했다. 거동이 불편한 재가 뇌성마비인들의 외출을 돕고 축구팀을 꾸리고 여가활동을 지원했다. 이곳 청우회는 자연스레 교제의 장이 되었다.
이렇게 활발히 운영되던 모임은 2007년 ‘한국뇌성마비장애인협회 청우(靑友)’로 거듭나 뇌성마비 청년 회원 200여 명이 활동하는 단체로 성장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윤정열 씨에게 1988년은 매우 특별하다. 서울올림픽이 열린 그 해, 서울장애인올림픽이 함께 개최됐다.
윤정열 씨는 축구국가대표로 선발, 주전 골기퍼로 활약했다. 메달권에 들지는 못했지만 이 때의 경험으로 이듬해인 1989년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 축구단의 전신인 뇌성마비장애인 축구부를 창단했다.
훈련 장소, 섭외, 대회 출전 등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7인제뇌성마비축구에 대한 열정을 더욱 커졌다. 윤정열 씨는 우리나라 장애인 축구의 1세대이다. 그라운드를 뛰던 선수에서 자연스레 지도자로 포지션을 바꿔갔다.
축구단을 체계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 축구지도자 과정을 이수했고 영국프리미어리그 스킬즈교육을 수강하기도 했다. 그가 코치로 있는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 축구단은 평균 연령 마흔 살의 뇌성마비장애선수 18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령의 선수단을 이끌면서 2011년부터 5년간 전국뇌성마비축국대회에서 준우승, 우승 등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그리고 선수단 가운데 일부는 2014 인천아시안게임 7인제축구 국가대표 등 국제경기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그 역시 2011년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기도 했다.
축구는 윤정열 씨의 삶을 바꿨다. 뇌성마비장애로 걷기조차 힘들었던 그가 축구를 시작하며 하지 근력이 좋아졌다. 보행이 가능해진 것. 누구보다 장애인 스포츠의 필요성을 알고 있다. 2010년부터 장애청소년 축구교실을 운영하며 기술자문도 맡고 있다. 글쓰기를 즐기는 그는 2005년부터 개인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는 장애인축구에 대한 그간의 경험이 담겨 있다.
때로는 해외 유명 선수들의 기술 분석과 뇌성마비축구선수들을 위한 지도방법도 기록해 둔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하게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그다. 지난해에는 한국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에 입학, 만학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판소리 명창 꿈꾸는, 발달장애 소리꾼
장성빈(남·19세·지적3급·전주예술고등학교 학생)
열여덟. 빠른 비트와 화려한 퍼포먼스의 아이돌음악이 익숙할 법한 나이. ‘2016 올해의 장애인상’ 수상자로 선정된 전주예술고등학교 2학년인 장성빈 군(남·19세·발달장애)은 또래 친구들과 달리 ‘국악(國樂)’에 푹 빠져 있다. 초등학교 1학년때 시작된 ‘국악앓이’가 벌써 10년 가까이 된다.
“학교 음악시간에 전래동요를 제법 잘 불렀던 모양이에요. 담임선생님께서 판소리를 배워 보는 게 어떠냐고 하시더라고요. 집 가까운 데에 국악 학원이 있어 보냈는데 아이가 진도를 잘 따라갔어요. 학원 선생님 권유로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흥보가’로 전국아마추어국악경연대회에 참가했는데 덜컥 장려상을 받았어요.(웃음) 그때부터 아이 스스로 명창이 되겠다 그런 꿈을 꿨어요.” 성빈 군의 어머니 배인년 씨(54)가 무척 자랑스러운 눈으로 성빈 군을 바라본다.
첫 수상 이후에도 크고 작은 대회에 나가 상을 곧잘 받았다. 성빈 군의 어머니는 기초생활수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빠듯한 형편에서도 판소리에 재능을 보이는 아이를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하고 싶었다.
“체계적으로 가르쳐야겠다 생각했어요. 전국의 여러 예술중·고등학교를 알아봤는데 중학교에서 판소리를 가르치는 곳은 몇 없더라고요. 전주는 판소리의 고장답게 명창은 물론 좋은 선생님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전주예술중·고등학교 진학을 목표로 시험을 봤는데 성빈이의 장애를 이해해 주시고 입학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정말 감동적인 순간이었죠.”
주위의 여러 도움으로, 학비는 정부에서 지원받고 있고 개인레슨은 기업의 후원을 받고 있다. 또, 공연 의상은 저렴하게 제작할 수 있는 곳을 추천받아 한복 맵시를 근사하게 뽐내고 있다.
“제일 좋아하는 건 ‘적벽가’입니다. 꼭 완창하고 싶습니다.” 성빈 군은 이제 막 ‘적벽가’를 배우기 시작한 터라 가사 하나 하나에 푹 빠져 있었다. 성빈 군은 판소리 다섯마당을 조금씩은 다 배운 상태이다. 대화를 나눌 때는 발음이 정확하지 않지만 소리를 하고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가사 전달력이 뛰어나다. “선생님들이 말씀해주시길 성빈이의 강점은 ‘목구성’이라고 해요. 장단 감각, 감정 표현이 좋대요. 특히, 구슬픈 곡을 잘 소화하는 것 같아요.”
성빈 군의 어머니는 아이의 재능을 좋은 일에 나누고 싶었다. 일 년에 두세 차례 집에서 가까운 전주성모요양병원을 찾아 치매 어르신들에게 판소리며 우리 민요를 들려 드린다. 그리고 방학이 되면 수원, 익산 등 여러 지역의 시설들을 다니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김일구, 송순성 선생님을 닮고 싶어요.” 장애를 가진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준 스승님들의 인품을 닮고 싶다고 했다. 올 여름방학이면 ‘득음’에 정진할 예정이다. 언젠가 그의 목표처럼 적벽가를 비롯해 판소리 다섯마당을 완창할 수 있는 ‘명창’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국민훈·포장, 대통령 표창, 국무총리 표창 수상자
■국민훈장(4명)
모란장 윤형영(남·57세·한국장애인선교단체총연합회)=1980년 자원봉사를 시작으로 무의탁 장애인과 중증장애인의 자립과 권익을 위해 활동했다. 특히 장학금 지원을 통한 장애학생의 학업발전에 기여했으며 사회복지사 처우개선, 장애아동 입양 등 장애인 복지증진을 위해 노력했다.
목련장 이건휘(남·57세·지체3급·한국지체장애인협회 충남협회장)=1990년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충청남도협회 공주시지회장을 시작으로 1993년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충청남도협회장을 역임하며 충청남도 내 장애인들의 인권향상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석류장 박근연(여·79세·사회복지법인 천마 대표이사)=51년 동안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국가지원이 열악한 시설장애인의 복지향상과 삶의 질 향상, 지역복지 및 장애인복지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석류장 손기식(남·61세·참일터직업재활원 시설장)=1988년 1월부터 2016년 1월 현재까지 28년 1개월 동안 장애인직업재활사업에 투신해 연간 45명씩 총 1305여 명의 중증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자립기반 마련, 사회참여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국민포장(3명)
박종규(남·62세·사회복지법인 한국청각장애인복지회 대표이사)=35년간 다양한 유형의 복지시설을 설립해 청각장애인복지의 산파역할을 했으며, 7950여 명의 청능언어 재활치료, 3600여 명의 취업 및 알선을 통해 청각장애인 재활과 경제적 자립에 크게 기여했다.
김성득(남·71세·심장3급·부산심장장애인협회 회장)=전국 최초의 부산심장장애인협회를 세우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심장장애인의 어려움과 고충을 몸소 부딪치며 개선점을 찾아내 건의했고, 지금까지 장애인의 인식개선과 복지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이삼식(남·66세·청각3급·전라남도장애인총연합회 회장)=지역 특성에 맞는 일자리 창출을 통해 저소득 장애인의 안정적인 기반 마련에 힘쓴 바 있다. 또한 장애인 편의와 복지 확대를 위한 자원 연계, 체육선수 배출, 장기 기증 및 장학금 지원 등 나눔을 실천했다.
■대통령표창(5명)
김현태(남·57세·청각언어2급·경남농아인협회 고성군지부 지부장)=한국농아복지회 경남지부체육부장을 시작으로 35년 동안 뛰어난 리더십으로 경남 마산, 고성 두 지역에 지부를 설립해 소외돼 있던 농아인의 복지와 삶의 질 향상 및 장애인 인권향상과 사회문화통합에 기여했다.
이찬우(남·56세·지체1급·한국척수장애인협회 중앙회 사무총장)=장애인 인식개선 및 제도개선 활동, 장애인권익을 위한 다양한 연대활동, 각종 위원회 활동, 국제 활동, 연구 활동과 함께 중도장애 극복과 일상의 삶 회복, 세금 내는 장애인의 삶과 공부하는 장애인으로 인권교육 및 인권문화 증진에 기여했다.
박세영(남·55세·강서뇌성마비복지관 관장)=장애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자립생활터전 제공을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고 직업재활, 스포츠활성화, 사회적응, 그룹홈 개설 등 다양한 성과에 기여했다.
정재현(남·45세·청각언어1급·해남반석농아교회 목사)=농아인 무료수화 교육, 차량 이동지원 등 자원봉사를 하고 있으며 인공와우수술이 필요한 청각장애아동과 후원병원을 연계시켜 수술을 받게 했다. 또한 독거 농아 노인 가정을 방문해 집안청소를 하는 등 장애인 복지증진에 기여했다.
열린음악회팀(한국방송공사 예능국)=2011년부터 2015년도까지 장애인의 날(4월 20일)을 기념해 특집 축하방송 프로그램을 자체 제작·방송함으로써 장애인에 대한 국민인식 개선에 기여했다.
■국무총리표창(4명)
구병화(남·57세·안산시청 지방행정주사)=장애인의 권리증진시책(장애인 차별금지 및 인권보장 기본계획수립, 장애인인권팀 구성 등) 추진 및 근로환경개선(장애인 고용기업 실태조사, 일자리 제공 등), 장애인의 재활 및 자립지원 등 장애인 복지 발전에 기여했다.
강영숙(여·59세·부산광역시장애인지역법인연합회 후원회장)=1995년 무료급식을 시작으로 44년간 장애인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특히 22년간 장애인 장학금·생필품 지원 및 교육기자재, 장애인해외문화탐방 등에 약 15억원을 후원해 장애인의 교육 및 문화·복지 증진에 크게 기여했다.
조수영(남·59세·청각2급·경남장애인단체총연합회 회장)=청각장애인의 사회적 불이익을 해소하고 생활체육을 활성화시켰으며 사회복지사 3급과정 개설로 장애인의 권익 확대에 기여했다.
기영남(남·40세·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경영총괄부장)=장애인단체에서 근무하면서 장애인 복지정책과 장애인의 인식개선, 장애인의 노동권 관련한 여러 정책·사업을 진행하는 등 장애인 고용 창출에 기여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학교 음악시간에 전래동요를 제법 잘 불렀던 모양이에요. 담임선생님께서 판소리를 배워 보는 게 어떠냐고 하시더라고요. 집 가까운 데에 국악 학원이 있어 보냈는데 아이가 진도를 잘 따라갔어요. 학원 선생님 권유로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흥보가’로 전국아마추어국악경연대회에 참가했는데 덜컥 장려상을 받았어요.(웃음) 그때부터 아이 스스로 명창이 되겠다 그런 꿈을 꿨어요.” 성빈 군의 어머니 배인년 씨(54)가 무척 자랑스러운 눈으로 성빈 군을 바라본다.
첫 수상 이후에도 크고 작은 대회에 나가 상을 곧잘 받았다. 성빈 군의 어머니는 기초생활수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빠듯한 형편에서도 판소리에 재능을 보이는 아이를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하고 싶었다.
“체계적으로 가르쳐야겠다 생각했어요. 전국의 여러 예술중·고등학교를 알아봤는데 중학교에서 판소리를 가르치는 곳은 몇 없더라고요. 전주는 판소리의 고장답게 명창은 물론 좋은 선생님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전주예술중·고등학교 진학을 목표로 시험을 봤는데 성빈이의 장애를 이해해 주시고 입학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정말 감동적인 순간이었죠.”
주위의 여러 도움으로, 학비는 정부에서 지원받고 있고 개인레슨은 기업의 후원을 받고 있다. 또, 공연 의상은 저렴하게 제작할 수 있는 곳을 추천받아 한복 맵시를 근사하게 뽐내고 있다.
“제일 좋아하는 건 ‘적벽가’입니다. 꼭 완창하고 싶습니다.” 성빈 군은 이제 막 ‘적벽가’를 배우기 시작한 터라 가사 하나 하나에 푹 빠져 있었다. 성빈 군은 판소리 다섯마당을 조금씩은 다 배운 상태이다. 대화를 나눌 때는 발음이 정확하지 않지만 소리를 하고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가사 전달력이 뛰어나다. “선생님들이 말씀해주시길 성빈이의 강점은 ‘목구성’이라고 해요. 장단 감각, 감정 표현이 좋대요. 특히, 구슬픈 곡을 잘 소화하는 것 같아요.”
성빈 군의 어머니는 아이의 재능을 좋은 일에 나누고 싶었다. 일 년에 두세 차례 집에서 가까운 전주성모요양병원을 찾아 치매 어르신들에게 판소리며 우리 민요를 들려 드린다. 그리고 방학이 되면 수원, 익산 등 여러 지역의 시설들을 다니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김일구, 송순성 선생님을 닮고 싶어요.” 장애를 가진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준 스승님들의 인품을 닮고 싶다고 했다. 올 여름방학이면 ‘득음’에 정진할 예정이다. 언젠가 그의 목표처럼 적벽가를 비롯해 판소리 다섯마당을 완창할 수 있는 ‘명창’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국민훈·포장, 대통령 표창, 국무총리 표창 수상자
■국민훈장(4명)
모란장 윤형영(남·57세·한국장애인선교단체총연합회)=1980년 자원봉사를 시작으로 무의탁 장애인과 중증장애인의 자립과 권익을 위해 활동했다. 특히 장학금 지원을 통한 장애학생의 학업발전에 기여했으며 사회복지사 처우개선, 장애아동 입양 등 장애인 복지증진을 위해 노력했다.
목련장 이건휘(남·57세·지체3급·한국지체장애인협회 충남협회장)=1990년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충청남도협회 공주시지회장을 시작으로 1993년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충청남도협회장을 역임하며 충청남도 내 장애인들의 인권향상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석류장 박근연(여·79세·사회복지법인 천마 대표이사)=51년 동안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국가지원이 열악한 시설장애인의 복지향상과 삶의 질 향상, 지역복지 및 장애인복지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석류장 손기식(남·61세·참일터직업재활원 시설장)=1988년 1월부터 2016년 1월 현재까지 28년 1개월 동안 장애인직업재활사업에 투신해 연간 45명씩 총 1305여 명의 중증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자립기반 마련, 사회참여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국민포장(3명)
박종규(남·62세·사회복지법인 한국청각장애인복지회 대표이사)=35년간 다양한 유형의 복지시설을 설립해 청각장애인복지의 산파역할을 했으며, 7950여 명의 청능언어 재활치료, 3600여 명의 취업 및 알선을 통해 청각장애인 재활과 경제적 자립에 크게 기여했다.
김성득(남·71세·심장3급·부산심장장애인협회 회장)=전국 최초의 부산심장장애인협회를 세우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심장장애인의 어려움과 고충을 몸소 부딪치며 개선점을 찾아내 건의했고, 지금까지 장애인의 인식개선과 복지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이삼식(남·66세·청각3급·전라남도장애인총연합회 회장)=지역 특성에 맞는 일자리 창출을 통해 저소득 장애인의 안정적인 기반 마련에 힘쓴 바 있다. 또한 장애인 편의와 복지 확대를 위한 자원 연계, 체육선수 배출, 장기 기증 및 장학금 지원 등 나눔을 실천했다.
■대통령표창(5명)
김현태(남·57세·청각언어2급·경남농아인협회 고성군지부 지부장)=한국농아복지회 경남지부체육부장을 시작으로 35년 동안 뛰어난 리더십으로 경남 마산, 고성 두 지역에 지부를 설립해 소외돼 있던 농아인의 복지와 삶의 질 향상 및 장애인 인권향상과 사회문화통합에 기여했다.
이찬우(남·56세·지체1급·한국척수장애인협회 중앙회 사무총장)=장애인 인식개선 및 제도개선 활동, 장애인권익을 위한 다양한 연대활동, 각종 위원회 활동, 국제 활동, 연구 활동과 함께 중도장애 극복과 일상의 삶 회복, 세금 내는 장애인의 삶과 공부하는 장애인으로 인권교육 및 인권문화 증진에 기여했다.
박세영(남·55세·강서뇌성마비복지관 관장)=장애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자립생활터전 제공을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고 직업재활, 스포츠활성화, 사회적응, 그룹홈 개설 등 다양한 성과에 기여했다.
정재현(남·45세·청각언어1급·해남반석농아교회 목사)=농아인 무료수화 교육, 차량 이동지원 등 자원봉사를 하고 있으며 인공와우수술이 필요한 청각장애아동과 후원병원을 연계시켜 수술을 받게 했다. 또한 독거 농아 노인 가정을 방문해 집안청소를 하는 등 장애인 복지증진에 기여했다.
열린음악회팀(한국방송공사 예능국)=2011년부터 2015년도까지 장애인의 날(4월 20일)을 기념해 특집 축하방송 프로그램을 자체 제작·방송함으로써 장애인에 대한 국민인식 개선에 기여했다.
■국무총리표창(4명)
구병화(남·57세·안산시청 지방행정주사)=장애인의 권리증진시책(장애인 차별금지 및 인권보장 기본계획수립, 장애인인권팀 구성 등) 추진 및 근로환경개선(장애인 고용기업 실태조사, 일자리 제공 등), 장애인의 재활 및 자립지원 등 장애인 복지 발전에 기여했다.
강영숙(여·59세·부산광역시장애인지역법인연합회 후원회장)=1995년 무료급식을 시작으로 44년간 장애인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특히 22년간 장애인 장학금·생필품 지원 및 교육기자재, 장애인해외문화탐방 등에 약 15억원을 후원해 장애인의 교육 및 문화·복지 증진에 크게 기여했다.
조수영(남·59세·청각2급·경남장애인단체총연합회 회장)=청각장애인의 사회적 불이익을 해소하고 생활체육을 활성화시켰으며 사회복지사 3급과정 개설로 장애인의 권익 확대에 기여했다.
기영남(남·40세·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경영총괄부장)=장애인단체에서 근무하면서 장애인 복지정책과 장애인의 인식개선, 장애인의 노동권 관련한 여러 정책·사업을 진행하는 등 장애인 고용 창출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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