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콜 기사 위협하는 발달장애인? "인권위에 뒷통수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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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원 기자
- 승인 2020.10.26 18:16
발달장애인은 앞자리 앉으면 위험하다? 비장애인 기사 위협사건이 더 많아 "매년 3천건"
서울시설공단 "발달장애인 무조건 보호자 동행"... 혼자서는 택시 못 타 "이용률 저해시켜"
[소셜포커스 박지원 기자] = 발달장애인의 장애인콜택시(이하 장콜) 보조석 탑승을 거부한 기사의 행위는 '차별'일까 아닐까?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차별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분노한 장애인들이 금일(26일) 오후 인권위 앞으로 시위를 나왔다. 국가기관이라고 하나 장애인들이 억울할 때 가장 많이 찾았던 곳이 인권위였던만큼 배신감을 이루말할 수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지난해 8월 27일 자폐성장애를 가진 19세의 K군은 보호자인 모친과 함께 서울시공단에서 운영하는 장콜 택시를 이용하게 됐다. 자폐성 장애로 자신만의 규칙과 반복되는 행동을 보였던 K군은 그날도 자신이 좋아하는 기사의 옆자리 즉, 보조석에 앉고 싶어했다.
K군의 어머니 ⓒ소셜포커스
K군의 모친은 "우리 아이가 어렸을 때 노란색 장콜을 탈 때면 주변에서 바라보는 동정과 시혜의 눈빛때문에 타기 싫을 때가 많았어요. 그리고 장콜 보조석에는 대부분 기사들이 가방이나 커피를 놓고 다니니까 애초에 보조석에는 탈 생각도 못 했었구요"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장콜 배차가 느리잖아요. 일반 택시를 이용해야될 때도 많았는데, 아이가 워낙 사람을 좋아하다보니 보조석에 턱하니 앉더라구요. 그날은 신나서 안전벨트도 하고 기사님과 악수도 하고 안부도 물으면서 너무 좋아하더라구요. 보조석에만 앉고자하는, 하나의 행동을 고집하려는 아이의 특성을 이해해주는 기사들도 많다는 것을 일반 택시를 타면서 경험하게 됐고, 장콜을 탈 때도 보조석에 앉고자하는 아이의 선택이 존중받아야된다는 생각에 이 자리에 서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장콜을 탔던 그 날도 K군은 보조석에 앉고 싶어했지만, 기사는 "위험할 수 있다"는 이유로 K군의 보조석 탑승을 거부했다. 흥분한 K군을 진정시키고 기사와 실랑이를 하느라 진이 빠지는 것도 일이지만, 가장 화가 나는 건 인권위의 결정이었다. 그해 12월 19일 K군의 모친이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이하 장추련)의 도움을 받아 인권위에 시정권고를 요구하는 진성서를 넣었지만, 올해 6월 29일 인권위가 해당 진정를 기각처리했기 때문이다.
장추련의 나동환 변호사는 "발달장애인의 장콜 보조석 탑승은 자신의 기호 및 취미생활의 일환으로서 좌석 선택권 행사의 의미뿐만 아니라, 자기인격 발현의 수단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며 "발달장애인 이용객은 위험하다는 전제 하에, 보조석 탑승을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행위는 '최소침해성의 원칙'에 반해서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행동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규탄했다.
취객이 택시 기사나 버스 기사를 폭행하는 사건들이 다수 발생하면서 장애인 이용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또한 강해졌다는 추측도 따르고 있다. 경찰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비장애인의 공격행위로 인해 운전상의 안전이 심하게 위협받는 사례는 매년 약 3천건에 이르고 있다. 그에 반해 발달장애인이 장콜 보조석에 탑승해서 사고가 났다는 뉴스는 거의 없기에, 이 또한 발달장애인을 '위험한 존재'로 보는 뿌리깊은 편견의 결과라는 지적이 따르고 있다.
피플퍼스트 서울센터 김대범 활동가(발달장애)는 장콜 이용 경험이 많지 않다고 토로했다. 김 씨는 "서울시설공단의 장콜 이용 기준을 살펴봤다. 발달장애인은 보호자가 반드시 함께 타야한다는 규정이 명시되어있더라"며 "중증 발달장애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보호자의 동행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모든 발달장애인을 하나로 묶어서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혼자서 장콜 이용할 수 있는 발달장애인도 많다"라며 서울시설공단에서 명시한 보호자동반기준을 바꿔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재왕 공익인권변호사모임 변호사 또한 인권위의 기각 결정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김 변호사는 "15년~20년 전만해도 장애인들이 보험 가입 어려울 때 '장애를 이유로 보험가입을 금지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권고한 것이 인권위였다. 2017년에는 지자체가 운영하는 복지시설을 정신장애인이 이용하지 못하게 한 규정을 차별이라고 판단했었다. 구청이 운영하는 수영장에 등록하려는 발달장애인에게 보호자를 데리고 오라고 한 것도 차별이라고 했다. 유사한 사례들을 뒤로하고 도대체 본 사건을 왜 차별행위가 아니라고 하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라며 비판했다.
그러면서 "단지 발달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장콜 보조석 탑승을 거부한 것은 당연히 차별이라고 해야한다. 인권위의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을 수 있게 행정심판을 청구하는데, 사실 인권위가 행정심판 결과를 기다릴 필요도 없다. 행정기관은 오판에 대해 언제든지 직권으로 취소하고 다시 결정할 수 있다. 인권위는 지금이라도 변호사위원회를 소집해서 잘못 판단했다고 인정하고 다시 결정을 내려야한다"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