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등급제, 31년 만에 사라지나?
- 김윤교 기자
- 승인 2019.06.25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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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자 중심의 맞춤형 서비스 도입
활동지원서비스 대상 모든 장애인으로 확대
[소셜포커스 김윤교 기자] = 오는 7월 1일부터 장애등급제가 폐지된다. 장애인 당사자들은 1988년 의학적 심사로 1~6급 장애등급제가 도입된 지 31년 만의 새로운 변화를 마주하게 됐다.
보건복지부(장관 박능후)는 25일 장애인등급의 단계적 폐지에 따른 ‘수요자 중심 장애인 지원체계’ 구축 방안을 발표했다.
그동안 장애인에 대한 각종 지원은 장애등급에 따라 차등적으로 제공되어 장애인의 개별적 욕구를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장애계의 지속적인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일부 장애단체들은 광화문 천막농성을 이어가며 지속적인 장애인등급 폐지를 주장해왔다.
이에 정부는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를 국정 과제로 채택했으며, 2017년 10월 장애등급제 폐지 민관협의체를 설치하고 관계부처 시행준비단을 꾸리는 등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추진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
정부에서 발표한 이번 장애인등급 폐지의 핵심은 ‘수요자 중심의 장애인 지원체계 구축’이다. 그동안 지원체계가 장애등급에 따른 공급자 중심에 있다는 지적에서 벗어나, 앞으로는 개개인의 욕구와 환경을 보다 세밀하게 고려하여 서비스를 지원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종합조사 도입, 전달체계 강화 등 3개의 대안을 제시했다.
▶ 1~6급 장애등급이 사라지고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과 ‘심하지 않은 장애인’ 구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종전의 1~6급으로 나뉘었던 장애등급이 없어진다. 장애인등록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장애등급은 사라진다.
장애등급이 사라지더라도 장애정도에 따라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과 ‘심하지 않은 장애인’으로 구분되고, 종전 1~3급의 중증 장애인에게 인정되던 우대혜택은 그대로 유지된다.
종전 1~3급은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으로, 4~6급은 심하지 않은 장애인으로 그대로 인정되기 때문에 장애인 심사를 다시 받거나 장애인등록증(복지카드)을 새로 발급받을 필요는 없다.
▶ 서비스 지원 대상의 단계적 확대 “건강보험료 및 노인장기요양보험 경감 대상 확대, 특별교통수단 확충”
장애등급을 기준으로 지원하던 141개 서비스 중 12개 부처 23개 서비스의 대상도 확대된다. 건강보험료 및 노인장기요양보험료 경감이 확대되고, 특별교통수단 법정대수도 단계적으로 확충된다.
건강보험료는 현행 1,2급 30%, 3.4급 20%, 5,6급 10%에서 중증 30%, 경증 20%로 늘어나고, 노인장기요양보험도 현행 1,2급 30% 지원에서 중증 30% 지원으로 확대 적용된다. 교통약자의 이동지원을 위해 휠체어 탑승설비 등을 장착한 차량도 현재 대상자 200명당 1대꼴에서 150명당 1대꼴로 약 1,400여대 많아진다.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생활을 위한 건강보험 장애인보장구 및 장애인보조기기 품목도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자세보조용구, 욕창예방매트리스, 이동식전동리프트, 휠체어 등 지원대상이 중증 지체 및 뇌병변으로 확대되고, 흰지팡이 기준액도 2만5천원으로 인상된다. 또 저시력 보조안경의 내구연한도 5년에서 3년으로 단축된다.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의 조례에 근거하여 지원되는 장애인 서비스 대상도 확대된다. 지자체에서는 장애등급을 규정하고 있는 조례 1,994개를 정비하고 있으며, 지자체 장애인 서비스 902개 중 200여 개 사업 대상이 확대될 예정이다. 서비스들은 ‘장애인이 불리해지지 않도록 한다는 원칙’ 하에서 대부분 현행 수준의 지원이 유지된다.
▶ 장애인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 도입 “활동지원시간은 늘리고, 자부담은 줄인다”
장애인의 욕구와 환경을 고려한 서비스 지원을 위해 ‘장애인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이하 종합조사)가 시작된다. 종합조사는 장애인의 서비스 지원수준을 결정하기 위한 것으로 신청인의 일상생활 수행능력, 인지‧행동특성, 사회활동, 가구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종합조사 대상은 신규 대상자나 3년이 지난 갱신 대상자이며 7월부터 종합조사를 통해 판정받게 된다.
종합조사는 7월 1일부터 활동지원급여, 장애인 보조기기, 장애인 거주시설, 응급안전서비스의 4개 서비스에 우선 적용된다. 이 외에 장애인 이동지원 분야, 소득 및 고용지원 분야의 경우 서비스 특성에 맞는 종합조사를 추가 개발해 각각 2020년과 2022년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활동지원서비스의 평균지원 시간과 이용자가 확대될 예정이다. 당장 7월부터 장애유형별 활동지원 월평균 지원시간이 평균 7시간 확대되고, 월 최대 지원시간도 현행 441시간(일14.7시간)에서 480시간(일16시간)까지 늘어난다.
뿐만 아니라 활동지원서비스 이용 시 본인부담금도 현행 32만2900원에서 15만8900원으로 인하하여 장애인들의 부담이 최대 50% 경감한다는 계획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장애유형별 특성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평가메뉴얼 및 세부기준은 장애유형별로 세분화하였다”고 말하며 “다만 기존 활동지원 수급자가 갱신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지원시간이 감소하는 경우 일정기간 경과조치를 통해 지원수준의 급격한 감소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필요한 서비스를 빠짐없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전달체계 강화
장애인이 서비스 지원에 대해 자세히 몰라 혜택을 못 받는 일이 없도록 전달체계를 강화한다. 사회보장정보시스템(행복e음)을 통해 장애유형, 장애정도, 연령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선별하고, 누락 서비스도 찾아내 안내할 계획이다.
현재 장애인연금에만 시행 중인 ‘서비스 수급희망 이력관리’를 올해는 활동지원서비스, 장애수당에 확대 적용한다. 복지사각지대를 최소화하고, 장애인복지관, 발달장애인센터 등 지역사회 관련 기관의 전문 인력이 동행하도록 해서 충실한 상담이 이루어지도록 개선한다.
기초자치단체는 장애인 전담 민관협의체를 설치해 장애인에게 특화된 사례관리를 강화한다. 단, 공공과 민간의 장애인 관련 전문기관들이 모두 참여하는 원칙하에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설치 및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전문 인력도 확충한다.
▶ 정부 “꼭 필요한 서비스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갈 예정”
정부는 수요자 중심의 장애인 지원체계를 기반으로 일상생활지원, 이동지원, 소득고용지원, 건강관리 등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을 위해 꼭 필요한 서비스를 단계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특히 정부 관계자는 “활동지원서비스는 2011년 도입이후 장애인의 사회참여에 크게 기여했으나 장애유형별 다양한 욕구를 대응하기 위해 주간활동 등 서비스 종류를 보다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일상생활에서 상당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장애인 비율이 14.4%에 달하는 점을 고려할 때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종합조사가 적용되는 활동지원 등 4개 서비스를 신청하고자 하는 장애인은 주민등록상 주소지 주민센터를 방문하거나, 우편, 팩스, 대국민 복지포털 ‘복지로(www.bokjiro.go.kr)‘를 통해 신청이 가능하다.
활동지원 신청 시에는 가구원수 확인, 사회활동 증빙 등을 위해 필요한 경우 구비서류를 함께 제출하면 되고, 신청이 접수되면 국민연금공단에서 일정을 미리 잡은 후 방문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번 장애인등급 폐지에 따른 대대적 개편에 대해 박능후 장관은 “수요자 중심의 장애인 지원체계로 전환은 장애계의 오랜 요구사항을 수용해 31년 만에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장애인 정책이 수요자 중심의 장애인 지원체계와 접목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고 이 과정에서 정책 당사자인 장애인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의견수렴과 소통에 더욱 힘쓰겠다”고 밝혔다.
▶ 장애계 “과연? 정말? 진짜?”
한편 장애인등급제 폐지는 장애계의 오랜 바람이었으나 장애계는 장애인등급 폐지에 따른 기대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거세게 분출하고 있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에서 종합조사표를 기준으로 지난 5월 31일부터 6월 9일까지 장애인당사자 2천519명(성인 1천569명, 아동 950명, 신규신청자 174명 포함)을 대상으로 모의평가를 진행한 결과, 상당수 인원이 구간하락과 활동지원 시간이 감소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보건복지부에 종합조사표 매뉴얼 공개를 요청했지만 보건복지부는 지속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6월19일 보건복지부의 답변에 따르면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조사 매뉴얼은 급여량의 책정 또는 서비스 적격 여부 등에 필요한 조사에 관련 사항이므로, 공개될 경우 공정한 업무수행에 현저한 지장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하며,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아직 종합조사표에 의한 서비스 적용기준을 명시한 내용이 확인되지 않았고, 실제 판정도 시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장애계의 주장은 추측에 불과하다. 그러나 7월 1일 이후 보건복지부 입장이 지속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장애계는 장애인을 등급으로 구분하지 않는 진짜 폐지를 위해서는 박능후 장관의 “장애인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향후 의견수렴과 소통에 더욱 힘쓰겠다”는 약속을 지켜야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